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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6.25 참전 소년병의 예우 및 보상이 필요합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병역 의무가 없는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 29,603명이 전쟁터에 동원되었습니다. 이들은 ‘소년병’으로, 강제 징집 또는 자원 입대를 통해 군번을 받고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그중 약 2,500명이 전사하였으며, 현재 생존자는 약 2,000명 이하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예우 및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국가유공자 지위조차 부여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0년 전 이들에 대한 특별법 마련의 필요성을 명시하고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소년병에 대한 국가의 실질적인 명예 회복 조치를 권고했지만, 전쟁 75년이 되도록 백발의 소년병들은 제대로 된 사과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지난해부터 소년병 추모 행사와 교육 자료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나 법적 근거 마련은 미비한 실정입니다. 낙동강 방어 전투 당시, 지역에서 동원된 소년병 피해가 가장 컸던 대구시가 전국 최초로 소년병 예우와 자료수집 등을 위한 예산을 편성했지만, 국가 차원의 제도적 예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9대 국회부터 소년병 예우 특별법 제정 추진과 관련 법안들이 여러 차례 제출됐지만, 폐기와 발의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소년병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 없다면, 어느 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할 것이냐?" "그저 이름이라도. 그때 그 사람들이 어리지만은 나라를 위해서 싸웠다, 그거 한 가지 알아줬으면. 뭐 다른 거 없어, 뭘 바라겠어." "내가 이제 92살. 6.25때 17살. 17세 이하 아동을, 전사자가 3천 명인데 3만 명을 현역 군인으로 자의든 타의든 군인으로 만들어가지고 3년 전쟁을 치르게 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치하의 말이 오늘날까지 한 마디 없습니다. 이게 되겠습니까?" 이에 저는 6.25 참전 소년병의 국가적 예우와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 국방부는 6.25 전쟁 참전 전체 소년병들의 병적기록 확인 및 작업과 공식 명단 확정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 국가보훈부는 소년병 참전 역사적 사실을 공식 기록 및 연구하고, 추모관 설립을 통해 소년병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 국회는 6.25 참전 소년병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위한 특별법(국가유공자 인정, 유족 보상 등..)을 조속히 제정해야 합니다. 소년병들의 명예 선양과 예우를 위한 조치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참고 : *메인 이미지 sbs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41210/130608974/1 https://news.skbroadband.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654 https://www.tbc.co.kr/news/view?pno=20250212152931AE01818&id=193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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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도의용군의 날을 만들어주세요!
여러분들은 학도병 이우근의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6·25 전쟁 당시 16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포항여중 전투 중 전사한 분이십니다. 당시 동성중학교 3학년이던 이우근 학도병의 옷 속 수첩에서는 피에 얼룩진 일기와 어머니께 전하는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후에 2010년 영화 <포화 속으로>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그의 일기와 편지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전쟁 속에 몸을 던진 어린 학도병의 당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학도의용군이 처음 편성된 것은 피난길에 나선 서울 시내 각급 학교의 학도호국단 간부 학생 200여 명이 수원에 모여 ‘비상학도대’를 조직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교복과 교모를 그대로 착용한 채 소총과 실탄을 지급받아 1950년 6월 29일부터 한강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국군부대로 들어가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어린 중학생 소년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학도의용군의 이름으로 실전에 참여한 학도들은 그로부터 6·25 전쟁의 전 기간을 통하여 모두 2만7700여 명에 이르렀고, 후방지역 또는 수복지역에서 선무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무려 2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감에 전쟁에 참전했던 분들에 대한 예우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경기도 내 1만 1천여명의 6·25전쟁 참전 용사들이 생존해 있지만 학도의용군의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의 경우 일본에서 모집해 선별 절차를 밟아 참전한 만큼 계급, 군번 등 기록이 남아 있고 보훈부 역시 이를 토대로 이들에 대한 분류 번호를 두고 있어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땅에서 전쟁터로 나간 학도의용군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증인, 사진 등 다른 자료로 참전을 증빙해야 하며 별도의 분류 번호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학도의용군이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전국에 생존 학도의용군이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도의용군 단체인 ‘6·25 참전 학도병 충혼 선양회’는 지난 23년 청원서 발표를 통해 “국방부 등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2만7천700명이 학생 신분으로 군번을 받지 않은 채 참전했고 6·25전쟁에 참전한 총 인원은 27만7천520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많은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조국을 위해 참전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적절한 예우를 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분들을 기억하는게 좋을까요? 아직까지도 6·25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에게는 군인이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매해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이들의 공훈과 나라 사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해놓았으며, 10월 1일은 국군의 날로 정해놨습니다. 하지만 아직 학도병의 날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한 마음으로 참전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한 분들의 노력을 기리고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이 첫 참전을 했던 날짜인 6월 29일을 학도의용군의 날로 제정할 것을 청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우선 학도의용군이 학생이라 군번을 받지 못한 채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는 현재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SNS를 통해 알려야 합니다. 더불어 이우근 학도병의 시를 알리며 어린 나이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 낸 상황도 알리며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6월 29일을 학도의용군의 날로 정해 그분들을 기려야 할 것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임영언, 허성태, 2018, 한국전쟁 당시 학도의용군 활약과 국가보훈 선양사업 연구 갤러리그리브스의 학도병 이우근 설명문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30726580301 https://v.daum.net/v/20230713163141569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32083&cid=46628&categoryId=46628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801/120519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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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6·25 전쟁을 전세계에 알린 종군기자들을 기억해주세요
우리는 ‘전쟁’ 하면 총성과 포연, 군인들의 전투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전쟁에는 총과 대포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참상과 진실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역사를 배우고, 세계는 한국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종군기자(War Correspondent)’입니다. 전장의 한가운데서 펜을 들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 이들은 총탄이 날아드는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쟁의 실상을 기록하고, 세계에 진실을 전한 증언자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6·25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무너진 다리, 폐허가 된 도시, 아이를 안고 달리던 어머니의 모습… 이 모든 장면은 총을 든 군인이 아닌, 종군기자들이 남긴 기록입니다. 마거릿 히긴스,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 – 이 두 종군기자는 전쟁 발발 직후 한국에 도착해, 서울 점령부터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선을 가장 가까이에서 취재했습니다. 그들의 기사와 사진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한국전쟁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고, 세계 여론 형성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의 이름과 공로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이들의 기록과 정신을 되새기고, 그 진실을 다음 세대에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마거릿 히긴스는 1950년 도쿄 특파원 부임 직후, 전쟁 소식을 듣고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그녀는 한강 인도교 폭파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 피난민들과 함께 수원까지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동행해 도쿄로 복귀한 뒤, 미 지상군 파병을 촉구하는 기사를 송고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다시 맥아더와 함께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여성은 함정 탑승이 불가하다"는 미군 규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자가 아니라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기자다"라고 외치며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로 작전에 동행했고, 병사들과 함께 상륙했습니다. 히긴스는 서울 점령, 낙동강 방어, 장진호 철수 등 전쟁의 결정적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도했고, 그 결과 1951년 《War in Korea》를 출간하여 여성 최초 퓰리처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그녀에게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했습니다.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은 LIFE지 소속 사진기자로서, 1951년 1월까지 미 해병대와 함께 북진 작전에 동행하며 모든 전투를 촬영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장진호 전투입니다. 무표정한 병사들, 추위에 지친 군인들, 시신을 나르는 병력… 그의 사진은 영웅화된 선전 사진과 달리, 고통과 절망 속 인간의 모습을 정직하게 담아냈습니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든 그는, 참혹함과 진실을 담담한 시선으로 기록했고, 그의 사진은 오늘날까지 전쟁의 본질을 보여주는 세계적 다큐멘터리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전쟁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며, 기억은 기록한 자들 덕분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히긴스와 던컨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서지 않았다면, 세계는 6·25 전쟁의 실상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조차도 이 전쟁이 단순한 한반도의 내전이 아닌, 자유와 침략, 인간성과 절망이 충돌했던 세계사의 전환점이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6·25 전쟁은 단지 한국만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기록 덕분에 세계는 이 전쟁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기록할 차례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 기록을 지켜내는 일은 우리가 다시는 이런 전쟁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책임입니다. 히긴스와 던컨의 용기와 기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지켜내는 또 다른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관심이, 대한민국의 ‘기억’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참고 자료 : https://www.youtube.com/watch?v=SzvVbJvKBJQ https://blog.naver.com/dmz-museum/223138256728 https://blog.naver.com/sp-swma/222406908088 https://military.asiae.co.kr/view.htm?idxno=2016042909114367762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724515071?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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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외국인 관광객 바가지요금 근절, 공정관광신고시스템 도입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바가지요금, 과도한 가격 책정, 불친절한 응대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민원이나 상점 단속을 넘어, 국가 이미지와 관광 신뢰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외교적 문제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공공 기반의 공정 관광 시스템 도입을 제안합니다. 1. 외국인 전용 ‘공정 관광 신고 웹/앱 플랫폼’ 구축 사진, 위치, 가격 등을 간단히 첨부하여 부당 사례 신고 가능 다국어 지원 및 익명 제보 가능 2. 신고 누적 업소에 대한 관광 공공 포털 내 경고 표시 반복 신고 시 문화체육관광부·지자체 연계 현장 점검 정직한 상점에 대한 ‘K-페어 플레이 마크’ 도입 3. 외국인 대상 '공정 관광 캠페인' 전개 공항, 관광안내소, SNS, 유튜브를 통한 다국어 안내 바가지 없는 관광 문화 정착을 위한 국내외 공감 확산 이러한 제도는 국내 관광 생태계를 더욱 신뢰받는 방향으로 이끌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K-관광’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관광은 단순한 산업을 넘어 외교와 국격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바가지 없는 한국, 신뢰받는 대한민국을 위해 모두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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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K-소도시 세계 홍보 정책안
전 세계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머무는 곳은 대부분 서울, 부산 두 도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도쿄 외에도 오사카, 교토, 삿포로, 나가사키 등 다양한 소도시가 자체 브랜드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방 소도시들도 충분히 그런 힘이 있습니다. 통영의 한산도, 안동의 하회마을, 전주의 한옥마을, 군산의 근대문화거리, 강릉의 바다와 커피 거리—이 모든 곳은 서울과는 또 다른 '진짜 한국'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보 부족, 정보 미흡, 교통 접근성 등의 문제로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방문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아래는 구체화된 정책 제안입니다. 1. 소도시 관광 콘텐츠의 다국어화 및 온라인 지도 통합 제공 - 외국인을 위한 소도시 관광 앱/웹사이트 구축 (AR 기반 길안내 포함) - 영어·중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 등 주요 언어 지원 확대 2. 소도시 체류형 관광 프로그램 개발 - 지역민과의 교류(전통공예, 한옥 스테이, 지역 특산품 체험 등) - 장기체류 외국인 대상 시골살이·문화교류 프로그램 운영 3. 해외 K-문화 행사에서 ‘소도시 한국’ 소개 부스 설치 - K-pop 페스티벌, 한식 행사 등과 연계해 '서울 너머의 한국' 전시 - 외국 청년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해 브이로그·SNS 콘텐츠 확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는 서울과 부산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끼는 고향, 숨은 명소, 지역의 이야기가 외국인에게는 새롭고 특별한 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정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도시와 마을이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공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소도시의 이야기가 세계에 울릴 수 있도록,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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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K-Heritage 브랜딩 인증제를 도입합시다
K-유산 브랜딩 인증제란,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 (한글, 국악, 한복 등)을 상품 디자인, 마케팅 콘텐츠 등에 정통성 있게 반영한 글로벌 기업 또는 제품에 대해 정부가 공식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 및 소프트파워 강화,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 및 글로벌 확산, 글로벌 기업과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 문화외교 기반 마련 등을 목적으로 합니다. 1) 인증 대상: 국내외 글로벌 기업 또는 브랜드 (소비재, IT, 패션, 식음료 등) 한국 전통문화 요소를 상품/서비스/캠페인/디자인 등에 사용한 경우 2) 인증 기준 -한국 고유 문화유산의 역사적 사실 및 전통성에 기반했는가 -전통 요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창의성이 드러나는가 -해당 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 제고에 기여했는가 -일회성 캠페인이 아닌, 브랜드의 지속적 문화 협업 및 개발 가능성이 반영되었는가 -문화 도용, 왜곡, 상업적 착취가 없는가 -원작자와의 계약은 정당하게 체결되었는가 3)인증 운영 주체 -주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협력: 한국문화재재단,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외교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심사단: 전통문화 전문가+ 산업 디자이너 + 해외문화홍보 전문가 4)인증관리 -인증 마크 부여: 상품 포장, 광고, 웹사이트 등에 "K-Heritage 인증마크" 사용 가능 -인증 유효 기간: 2년, 이후 연장 심사 -위반 시 인증 취소 및 재공표 (문화 왜곡, 허위 사용 등) 5) 기대 효과 ·전 세계 소비지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고급되고 세련된 이미지로 인식 ·대한민국 문화의 정체성과 연속성 확보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 기업 입장에서 차별화된 브랜딩 수단 확보 ·인증 자체가 마케팅 자산화되어 실질적인 홍보 효과 발생 ·정부 인증을 받은 브랜드만이 전통문화 사용의 공신력 확보 ·무문별한 왜곡, 오용에 대한 사전 필터링 및 사후 관리 가능 ·국가와 기업이 협력하여 문화홍보의 책임을 분담하는 새로운 공공외교 모델 장출 ·외국 기업에게도 참여 유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