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선생을 명예 대한민국 홍보대사로 임명해주세요!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명예 대한민국 홍보대사로 임명해주세요!
전 세계적인 한류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류팬은 2억명을 돌파했으며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는 연일 세계인들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문화 한류를 통한 높아진 한국의 대한 국가이미지가
실제 한국의 이미지가 다를경우 한국의 이미지가 안좋아질수도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류의 일방적 확산에 대한 외국 국가들의 정서적 거부감은 반한, 혐한으로 이어질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류를 통해 외국인들이 접하는 매력있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실제 한국의 이미지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한국인 스스로가 높아진 한국의 국가이미지와 부합하는 국가이미지 제고 캠페인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100년전 외국에서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님을 명예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홍보대사로 위촉하여 세계에 알려나갈것을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 국민에게 제안합니다.
반크에서 안창호 선생을 명예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홍보대사로 위촉하고자 하는이유는
안창호 선생님은 자기 삶 전체를 세계속에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자 헌신했기때문입니다.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이 100년전 안창호 선생처럼
세계속에 한국의 이미지를 높여나가기 위해 직접 모범을 보이고 실천하면
한류를 통해 높아진 한국의 이미지와 실제 한국의 이미지는 일체가 되어 매력적이고 친근한 한국의 이미지는 완성이 될것입니다.
국가 이미지는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예술 등 한 나라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나타냅니다.
이때문에 국가 이미지는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매력으로 직결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리고 안창호 선생님은 100년 전 오늘날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낸 독립운동가입니다.
1894년 안창호 선생은 불과 나이 16세때 강대국들끼리 전쟁으로
나라가 무너지며, 국민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선생은 나라를 강하게 하는 힘은 교육에 있다고 판단해서
불과 21세 젊은 나이에 나라를 구할 인재를 육성할 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이 됩니다.
1902년 안창호 선생은 24세의 나이로
더 큰 세상에 가서 교육전문가가 되어
조국의 미래를 발전시키고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미국 생활 중에 안창호 선생은 고국이 힘이 없고 가난해서
동포들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미국 곳곳에서 고국에 대한
왜곡되고 편견 된 국가 이미지가 확산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은 미개하다."
"한국인은 더럽다."
"한국인은 미래가 없다."
"한국인은 스스로 주체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안창호 선생은 미국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왜곡된 국가 이미지를
바꾸고자 자신부터 실천했습니다.
직접 한국인 거주지역 곳곳에 있던 더러운 장소를 청소하고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실천에 감동해 함께 실천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미국 내 한국인 거주지역이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이미지는 놀랍게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미국 내 한국인들의
힘을 모으면 한국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한국인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힘든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한인들과 미국인 오렌지 농장주와 연결해서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오렌지 농장에서 한인들이 일하는 것은 작고 사소할지 몰라고,
이 일이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직접 오렌지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모범을 보였습니다.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합시다!”
"오렌지 한 개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일이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좋게 합니다."
"오렌지 하나로 우리나라 이미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오렌지 따는 일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영향력과 지도력은 세계 곳곳의 한인들에게 확산이 되었고
안창호 선생이 만든 단체는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정부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19년 안창호 선생의 인품과 헌신으로
세계 곳곳에 분산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침내 하나로 통합이 되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을 통해 하나가 된 통합 임시정부는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20년 1월 8일 자 독립신문 1면
안창호 선생은 세계인들에게 100년 후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제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황제가 없나요?
있습니다. 대한 나라에 과거에는 황제가 한 명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국민이 모두 다 황제입니다.
여러분이 다 황제요.
여러분이 앉은 자리는 다 옥좌며
머리에 쓴 것은 다 면류관입니다.
황제란 무엇입니까? 주권자의 이름입니다.
과거에 주권자가 한사람이었을 때는 국가 흥망의 책임은 한사람에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 전체에 달려있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품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에 반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1938년 3월 19일
안창호 선생 나이 60세
안창호 선생은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조국의 독립과 이 나라의 완성된 미래는 보지 못했지만
선생이 꿈꾼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세계 속에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안창호(1878년 11월 9일~1938년 3월 10일)
이에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자신의 삶 대부분을 세계속에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설계하고 완성시킨 안창호 선생을
명예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홍보대사로 위촉하고자 합니다.
전 세계적인 한류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류팬은 2억명을 돌파했으며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는 연일 세계인들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문화 한류를 통한 높아진 한국의 대한 국가이미지가
실제 한국의 이미지가 다를경우 한국의 이미지가 안좋아질수도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류의 일방적 확산에 대한 외국 국가들의 정서적 거부감은 반한, 혐한으로 이어질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류를 통해 외국인들이 접하는 매력있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실제 한국의 이미지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한국인 스스로가 높아진 한국의 국가이미지와 부합하는 국가이미지 제고 캠페인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100년전 외국에서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님을 명예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홍보대사로 위촉하여 세계에 알려나갈것을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 국민에게 제안합니다.
반크에서 안창호 선생을 명예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홍보대사로 위촉하고자 하는이유는
안창호 선생님은 자기 삶 전체를 세계속에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자 헌신했기때문입니다.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이 100년전 안창호 선생처럼
세계속에 한국의 이미지를 높여나가기 위해 직접 모범을 보이고 실천하면
한류를 통해 높아진 한국의 이미지와 실제 한국의 이미지는 일체가 되어 매력적이고 친근한 한국의 이미지는 완성이 될것입니다.
국가 이미지는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예술 등 한 나라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나타냅니다.
이때문에 국가 이미지는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매력으로 직결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리고 안창호 선생님은 100년 전 오늘날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낸 독립운동가입니다.
1894년 안창호 선생은 불과 나이 16세때 강대국들끼리 전쟁으로
나라가 무너지며, 국민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선생은 나라를 강하게 하는 힘은 교육에 있다고 판단해서
불과 21세 젊은 나이에 나라를 구할 인재를 육성할 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이 됩니다.
1902년 안창호 선생은 24세의 나이로
더 큰 세상에 가서 교육전문가가 되어
조국의 미래를 발전시키고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미국 생활 중에 안창호 선생은 고국이 힘이 없고 가난해서
동포들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미국 곳곳에서 고국에 대한
왜곡되고 편견 된 국가 이미지가 확산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은 미개하다."
"한국인은 더럽다."
"한국인은 미래가 없다."
"한국인은 스스로 주체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안창호 선생은 미국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왜곡된 국가 이미지를
바꾸고자 자신부터 실천했습니다.
직접 한국인 거주지역 곳곳에 있던 더러운 장소를 청소하고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실천에 감동해 함께 실천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미국 내 한국인 거주지역이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이미지는 놀랍게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미국 내 한국인들의
힘을 모으면 한국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한국인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힘든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한인들과 미국인 오렌지 농장주와 연결해서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오렌지 농장에서 한인들이 일하는 것은 작고 사소할지 몰라고,
이 일이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직접 오렌지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모범을 보였습니다.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합시다!”
"오렌지 한 개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일이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좋게 합니다."
"오렌지 하나로 우리나라 이미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오렌지 따는 일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영향력과 지도력은 세계 곳곳의 한인들에게 확산이 되었고
안창호 선생이 만든 단체는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정부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19년 안창호 선생의 인품과 헌신으로
세계 곳곳에 분산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침내 하나로 통합이 되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을 통해 하나가 된 통합 임시정부는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20년 1월 8일 자 독립신문 1면
안창호 선생은 세계인들에게 100년 후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제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황제가 없나요?
있습니다. 대한 나라에 과거에는 황제가 한 명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국민이 모두 다 황제입니다.
여러분이 다 황제요.
여러분이 앉은 자리는 다 옥좌며
머리에 쓴 것은 다 면류관입니다.
황제란 무엇입니까? 주권자의 이름입니다.
과거에 주권자가 한사람이었을 때는 국가 흥망의 책임은 한사람에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 전체에 달려있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품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에 반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1938년 3월 19일
안창호 선생 나이 60세
안창호 선생은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조국의 독립과 이 나라의 완성된 미래는 보지 못했지만
선생이 꿈꾼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세계 속에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안창호(1878년 11월 9일~1938년 3월 10일)
이에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자신의 삶 대부분을 세계속에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설계하고 완성시킨 안창호 선생을
명예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홍보대사로 위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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