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을사영웅, 호머 헐버트 박사를 기억합시다

이정우님의 문제제기
여러분, 을사늑약에 저항했던 다섯 명의 을사영웅을 기억하십니까?
다섯 을사영웅 만큼이나 을사늑약에 저항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인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박사입니다.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한국의 편에 서서 전세계에 을사늑약 뿐만 아니라 일제의 강제 합병을 알린 인물입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고종 황제의 특사로 파견되어 전세계에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렸습니다.

1. 1905년 특사 파견
일본은 1904년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듬해에 일본의 한국 지배를 영국이 양해한다는 내용을 담은 제2차 영일 동맹을 체결하였습니다. 이는 앞서 1904년에 체결된 한일의정서(대한제국이 러일전쟁을 지원한다면,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과 황실의 안녕을 보장하고 한국이 독립국으로 존속할 것을 약속하는 조약)에 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1896년부터 조선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부임하며 고종 황제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조선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미국 특사로 임명되어 일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 백악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헐버트 박사가 미국에 도착한 바로 그날, 을사늑약은 고종 황제의 윤허와 서명도 없이 강제로 체결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그 소식을 전해들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고종 황제의 친서를 들고 미국 백악관의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이미 일본과 손을 잡았던 미국은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일본은 미국 정부를 통해 ‘보호조약이 체결되어 한국 국민은 매우 만족한다.’라는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약 한달 뒤, 헐버트 박사는 을사늑약이 서명 없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기 때문에 ‘무효’라고 선언한 고종 황제의 전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이 전보를 받고 <뉴욕타임스>와 회견을 가졌으며, <대한제국, 조약을 부인하다>와 <한국 황제를 위한 미국 국민에 대한 호소> 기사를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한국의 현실을 알리고 일본의 성명이 거짓되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2. 1907년 특사 파견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다시 한번 을사늑약의 무효와 일본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 파견을 추진하였습니다. 고종 황제는 헐버트 박사를 미국으로 파견했던 점을 고려하여, 조약 상대국 원수 방문 특사로 헐버트 박사를 임명하고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는 특사로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임명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네 명의 특사를 파견하였습니다.

헐버트 박사와 세 명의 한국인 특사는 비밀리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나타났는데, 이를 본 일본 정부는 매우 당황하였지만 을사늑약으로 모든 외교권이 일본에 위임됐기에 한국 대표는 회의에 참석할 권한이 없다는 등 온간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그러자 결국 한국 특사의 회의 참석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헐버트 박사는 헤이그 특사 파견 도중 <만국평화회의보> 편집장인 영국 언론인 스테드를 만나 한국 특사들의 활동을 보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을사늑약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내용을 담은 <공고사>를 집필하였고, 이는 <만국평화회의보>에 기고되어 각국 대표들에게 호소할 수 있도록 하는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헐버트 박사 덕분에 당시 특사들의 활동은 국제적으로 보도되었고, 한국의 독립 의지가 전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영국 언론인 스테드의 주선으로 특사들은 각국 신문기자단 모임인 국제협력재단의 평화클럽에서 한국에서의 일본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연설을 진행하였습니다.

헐버트 박사와 한국인 특사들은 이로 인해 일제의 압박과 감시가 심해지면서, 한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헐버트 박사는 미국으로 돌아가 단신 독립운동을 선언하고, 계속해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습니다.

이처럼 헐버트 박사는 특사, 언론인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을사늑약 전후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한 싸움에 앞장섰습니다. 그의 헌신은 민영환, 안중근 등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민영환은 헐버트 박사의 대미 특사 임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헐버트 박사는 민영환의 자결 이후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고 관립중학교 학생들에게 민영환의 혈죽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안중근 또한 하얼빈 의거 이후 수감된 뤼순 감옥에서 사카이 경사에게 헐버트 박사를 “한국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고마운 사람”이라며,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반크는 헐버트 박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그를 ‘외국인 을사영웅’으로 임명하고, 그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특히 반크는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공론화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현재 3등급(독립장)에 머물러 있는 서훈을 1등급(대한민국장)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여론을 함께 확산시키고자 합니다.
이정우님의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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